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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춘천) "노래하는 여전사 윤희순" 책자 발간
부서 보훈과
한국 최초의 여성의병장이자 독립운동가인 윤희순 여사의 나라사랑 일대기를 그린 책자가 출간되어 자녀를 가진 학부모 및 학생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아무리 왜놈들이 강성한들, 우리들도 뭉치면, 왜놈잡기 쉬울세라, 아무리 여자인들, 나라사랑 모를쏘냐...." ('안사람 의병가' 중) 강릉 출신 아동문학가 김 진씨가 쓴 이 책은 어린이들을 위한 윤희순 의병장 일대기로, 독립의식을 깨우치는 과정과 당시 나라의 정세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여성들로 이루어진 '안사람의병대'를 만들 당시의 긴박한 정황과 여성 의병들의 눈부신 활약을 소개하고 있다. 당시 윤희순 의병장의 외침도 생생하게 기록됐다. "여러분, 여자들이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왜놈들이 이제 우리 임금을 협박해 물러나게 하고, 군대마저 해산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힘을 모아 왜놈을 몰아내지 않으면… 의병에 나갑시다. 함께 의병을 도웁시다." 윤희순은 안사람의병대를 이끌고 집집마다 모금을 다니며 항일투쟁 자금을 거뒀고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쇠, 구리, 놋쇠도 모았다. 어떤 집에서는 보리쌀까지 내놓으며 의병운동을 도왔다. 안사람의병대가 모은 자금으로 춘천 서면 여의내골에서 무기와 탄약을 제조했다. 부족한 화약을 제조하기 위해 의병들은 오줌을 모으기도 했다. 오줌에 있는 유황성분으로 화약을 만들었던 것. 안사람의병대는 식사와 빨래, 심지어 화약 만드는 일까지 도맡아 했다. 그리고 남자 의병들과 함께 투쟁할 힘을 기르고자 고된 훈련도 마다하지 않았다. 춘천의 여성 의병 윤희순 여사는 본관은 해주로 인조 반정 공신인 윤희평(1469-1545, 공조판서)의 후손 윤익상(1823-1878)의 큰딸로 1860년 지금의 서울인 한성에서 태어났다. 16세에 위정척사파의 선비 춘천시 남면 휴홍석(외당, 1841- 1913)의 장남 유제원(1859-1915)과 결혼하였다. 유홍석은 을미의병(1895)당시 유중악, 유중락 등의 춘천 유림과 더불어 이소응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고 일본의 앞잡이인 세 관찰사와 일곱 군수를 목베는 등 의병 운동을 한 분이다. 윤희순 여사는 어려서부터 품성이 명민하고 언행이 활달하고 씩씩하였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주위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춘천시에서는 윤희순여사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윤희순 상을 제정하여 시상하고 있는데 2005년 제1회 시상식에서는 남동순 여사(서울)가 가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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