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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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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 소난지도 의병총 추념식 거행
부서 보훈과
6월 10일 오전 11시 당진군 석문면 소난지도 의병총에서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소난지도 의병 추모식이 거행됐다. 이날 행사에는 김영식 홍성지청장과 민종기 당진군수, 김낙성 국회의원 등 기관·단체장과 김상기 충남대 교수, 향토사학가 등 300여명이 참석하여 선열의 얼을 기렸다. 소난지도의병항쟁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국권이 침탈되자 경기도 수원 지방에서 거병하여 한때 포군을 거느릴 정도로 세력이 막강했던 홍일초(홍원식?)휘하의 의병들이 일군의 초토화 작전에 밀려 충남 당진으로 건너오면서 병오년 홍주전투에서 패한 의병 일부와 합류, 당시 호남 등지의 관곡 운송선들의 중간 정박지였던 석문면 소난지도에 의병 본진이 유둔케 되었다. 소난지도는 육지와 떨어져 신변 안전과 식량조달이 용이한 조건 등으로 의병들이 이곳에서 재기를 도모하던 중 이를 탐지한 한·일 순사 15명이 솔가지로 위장한 배로 기습하여 1908년 3월 15일 9시간 동안 총격전이 벌어졌고, 의병들의 탄약이 먼저 떨어지면서 섬 동쪽 해변 딴 섬까지 밀리며 육탄전으로 대항하다가 끝내 41명 전사, 9명 부상, 기타 의병 50여명이 바다에 투신하여 의로운 최후를 맞게 되었다. 당시 목격자들에 의하면 온종일 총소리가 콩 볶는 듯 하였고, 피맺힌 절규와 비명 소리가 진동하였으며, 화약 연기가 온 섬을 뒤덮었다고 하니 얼마나 처절한 전투였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의 유골이 해변가에 방치되어 있어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석문중학교 신이균 이사장 등 교직원과 학생들이 1970년 유골을 수습, 봉분을 봉축하고 묘역을 정비한 후 매년 현충일에 참배행사를 거행해 오다가 1997년부터 소난지의병항쟁기념사업회가 발족되면서 거군적으로 추모행사를 거행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이 의병총과 관련된 사실이 구전으로만 전해오다가 2003년 충청문화연구소의 고증으로 의병총임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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