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청소식

지(방)청소개

국가보훈부(국문) - 우리청소식(강원서부보훈지청) 상세보기 - 제목, 부서, 내용, 파일, URL 정보 제공
(친절춘천) 해외의병 역사탐방 답사기(3)
부서 보훈과
둘 째 날(Ⅰ) 2006.10.23(월) 왕청문의 양세봉 장군 동상과 청영릉을 답사하다. 05:30 모닝콜로 기상했다. 호텔밖 광장에는 추운날씨에도 불구하고 30명정도 되는 시민들이 경쾌한 중국음악에 맞추어 태극권을 하고 있다. 옆으로는 자전거, 리어카를 앞바퀴에 매단 자전거인력거 등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태극권이 끝나자 다시 칼춤체조가 시작된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그들만의 풍습이 이채로운데 중국에서는 일상이라 한다. 07:00 아침식사로 빵, 쌀죽, 향신료 냄세로 뒤덮힌 중국음식이 나온다. 모두들 잘 먹지를 못한다. 우리가 첫날 숙박한 흥경빈관은 별 세 개의 호텔인데 목욕물도 냉기만 조금 가신 상태고, 전기시설도 신통치 않고, 카펫 바닥엔 머리카락도 있고, 자면서도 추위에 몇 번 깨었다. 그런데 신빈에서는 가장 좋은 호텔이라고 하니 중국과 우리의 국력의 차이인가 하는 생각이 들고 은근히 한국인임에 자부심도 생긴다. 08:50 숙소를 나와 버스를 타고 왕청문(旺凊門)의 양서봉(또는 양세봉) 유적지로 향했다 정확한 주소는 중국 요녕성 신빈현 왕청문인 셈이다. 한때 왕청문은 작은 연변이라 불릴 정도로 우리 동포가 다수 거주하는 곳이었다 한다. 지금은 많은 조선족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였고 때문에 문을 닫았지만 이곳엔 “왕청문 조선족 소중학교”가 있었는데 이 학교에 조선혁명당등의 본부가 있었다고 하며 학교터에 우리의 첫 탐사지인 양서봉장군의 흉상이 서 있었다. 흉상에는 “항일명장 양서봉(梁瑞鳳) 1995년 8월 해방 50주년을 맞이하여 신빈현 왕청문진 인민정부에서 세움”이라고 되어있다. 선생은 옛날의 드높았던 의기를 뒤로한 채 이름없는 풀들의 보금자리가 된 조선혁명군 사령부를 말없이 내려다 보고 있는데 우리는 첫날의 첫탐사를 기념하는 단체촬영을 했다. 마침 조선족 할아버지가 지나가다가 한국말을 하는 우리 탐사단을 보고 반가와 한다. “할아버지는 고향이 어디세요?..” “난 밀양이야.”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세요..?” “내가 싫다고 떠나온 곳을 이제와서 무슨 낯으로 돌아가나...” 하시며 대원들에게 말린 옥수수를 하나씩 나누어 주신다. 좀더 시간이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하며 동포의 정을 나누고 싶은데 그럴수 없어 안타까왔다. 양세봉(1896-1934)장군은 호는 벽해, 평북 철산출신이다. 3.1운동 직후 평안도지역 최시홍 휘하의 천마산대에 입대하여 일본의 행정기관 파괴, 친일파 암살등 항일 무력투쟁을 전개하였으며 1920년 천마산대를 떠나 중국의 길림성으로 건너가 광복군 총영에서 활동하였다. 1923년 육군만주참의부 소대장으로 활발한 국내진공작전을 전개하였으며 제3중대장을 역임하다가 1931년 조선 혁명군 총사령관이 되어 중국군과의 연합작전을 성공리에 수행하였다. 1932년 중국의용군 총사령관 이춘윤과 한중연합군을 조직하여 융림제성에서 일본군을 격파하고 싱징현성을 함락 시켰다. 그해 재차 융림제성에서 일본군과 싸우다가 장칭먼으로 퇴각, 재기를 도모하던 중 일본군의 대규모 공격에 패하고, 일본 첩자 왕씨의 유인에 속아 왕청문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통화현 터우다오거우에서 일본군에 포위되어 독립군 전원과 함께 순국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 되었으며 뒤늦게 1995. 8.29 이곳에 선생의 흉상이 세워진 것이다. 09:00 양세봉 장군의 흉상을 참배하고 우리는 영릉으로 출발하였다. 원래 영릉가는 양세봉 장군 등 조선혁명군의 활동지역이었으므로 답사를 진행하고자 한 것이다. 이곳은 대체로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도로 포장도 비교적 잘 되어있다. 영릉가 앞에는 소자하라는 강이 심양을 향해 흘러가고 있으며 조선혁명군이 숨어 활동했다는 연두산이 있다. 이곳 영릉가는 양세봉의 조선혁명군이 만주사변 후 행한 첫 전투지역이라 하는데 1932년 4월 조선혁명군이 이곳을 공격하여 격전 끝에 일·만군 80여명을 섬멸하고 점령하였다고 한다. 영릉가에서 우리 일행은 청나라 선조들의 묘소가 있는 영릉을 탐사하였다. 심양에 있는 청나라 태조·태종의 능에 비하면 매우 초라한 모습이다. 청영릉(淸永陵) 요녕성 신빈만주자치현 경내에는 중국을 270여년간 통치하였던 청왕조 애신각라 씨족의 왕릉이 있는데 이곳을 청영릉이라 한다. 여기에는 청태조 누르하치의 시조 맹특목, 증조 복만, 조부 각창안, 아버지 탑극세 및 4명의 왕후의 유골과 의관이 매장되어 있다. 약 1만평 규모로 1682년부터 1829년까지 강희, 건륭, 가경, 도광등의 황제가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다. 청영릉은 만족의 선조가 남긴 귀중한 역사문화유산이고 중국의 국가급 중점문물보호단위에 속한다.
파일
U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