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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동부보훈지청

지(방)청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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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박진지구전적비 사이버탐방
부서 보훈과
마산보훈지청(지청장 이광남)의 두번째 사이버 탐방지는 창녕에 있는 박진지구 전적비 입니다. 이 전적비는 남지읍 월하리 산 181에 있으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매년 호국보훈의달, 현충일 등에 시민, 학생들의 참배와 정화활동이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다음은 현장안내판에 있는 내용으로써 당신의 상황과 전적비의 의의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은 38선을 넘어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한 후 한강을 넘어 남으로 침공을 계속하였다. 이에 국군과 유엔군은 힘을 모아 이를 저지하려 했으나 군사력을 열세로 후퇴를 계속하다가 개전40여일이 경과한 8월초에는 마침내 낙동강을 끼고 최후 방어선을 구축하게 되었다. 이에 더 물러설곳도 없는 절박한 상황하에서 왜관-상주-영덕을 연하는 전선은 국군이, 현풍-창녕-진동을 연하는 전선은 유엔군이 방어하게 되었다. 이곳 박진지역은 부산을 점령하기 위해 낙동강을 도하하여 최후의 발악을 하던 북한군과 미군이 2주간 사투를 벌였던 격전지이다. 당시 북한의 최정예 부대인 제4사단이 8월5일 야간에 이이목 나루터를 이용 은밀히 기급 침투하여 강변을 방어하고 있던 미군과 치열한 전투끝에 8월11일에는 영산읍까지 침공에 성공하였다. 북한 공산군은 일거에 부산을 함락시키기 위해 박진 나루터에 가마니 등으로 수중교를 만들어 각종 차량과 병력 등 주력을 투입시킴으로써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따라서 유엔군은 대구, 마산 등지에 있던 전 예비병력을 이곳으로 집중시킴으로써 서남리, 대봉리, 성산리에서 국운이 걸린 대혈전이 전개 되었고 마침내 8월19일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혀 적을 강건너로 완전히 격퇴시켰다. 이 전투의 승리로 전세가 역전되어 아군이 낙동강을 건너 반격하게 되었으며 인천상륙작전의 성공과 함께 압록강까지 진격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전사에 길이 빛날 주요한 전적지이다. -전적비 안내문- 참고로 남지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함양하고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현충일날 실시한 참배와 정화활동을 한 동영상을 올리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남지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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