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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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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탐방 - 장윤덕의사순국기념비((張胤德義士殉國紀念碑)(2003.5.6)
부서 지도과
장윤덕의사순국기념비(張胤德義士殉國紀念碑) □ 소재지 : 대구 북구 산격동 1370(경북대학교 내) □ 건립기관 : 장윤덕의사기념사업회 □ 건립일자 : 1965. 10. 30 □ 시설규모 : 높이 3m □ 관리기관 : 경북대학교 □ 내용 장윤덕 선생(1872-1907)은 경북 예천군(醴泉郡) 출신으로 1907년 7월에 격문을 각지에 발송하고 300여 명의 의병을 규합하여 의병진을 편성, 이강년대장 휘하에 합진하고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다. 주로 풍기, 봉화, 문경, 용궁, 예천 등지에서 활동하였으며 1907년 7월 9일에는 일본경찰대와 교전하여 일 보조원(日補助員) 3명과 한인 순검 2명을 사살하였다. 그 해 8월 27일 의병 300여 명을 인솔하고 풍기 일경분파소를 습격하여 1명을 사살하고 31일에는 봉화분파소를 습격하여 건물을 불태웠다. 그 후 9월 3일 문경읍을 습격, 일본인 2명을 사살하고 일인의 가옥을 소각시켰으며, 10일에는 이강년, 민긍호 등의 의진과 합세하여 1,0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문경면 갈평리에서 일경 영곡경시(永谷警視)와 삼원소위(三原少尉)가 인솔한 경찰대 및 수비대와 격전하여 적 3명과 한인 순검 2명을 사살하고 적을 격퇴시켰다. 9월 12일, 예천읍을 습격하고 이어 16일 3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대구수비대를 격파하고자 상주읍을 습격, 일경의 자위단(自衛團)과 교전하였다. 이 전투 중 대구수비대에서 전중(田中)대위가 1개 중대를 인솔하고 출동하여 격전이 벌어졌으나 중과부적으로 의병진은 무너지고 장윤덕은 총상을 입고 체포되었다. 체포된 후 이송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해도 굴하지 않고 스스로 혀를 끊고 함구하며 항거하다가 1907년 9월 16일 상주군 함창면 구향리 뒷산에서 총살당하여 35세의 젊은 나이에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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