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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동부보훈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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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마산] 단정 배중세 추모제
부서 보훈과
광복 제61주년을 맞아 마산보훈지청(지청장 류대식) 관내 창원문화원에서는 박완수 마산시장, 김철곤 창원시의회의장, 고성범 직보팀장 등 15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창원시 상남동 순국기념비에서 단정 배중세선생 추모식을 가졌다. 단정 선생은 1919년 11월 9일 만주 길림성 파호문외(吉林省 巴虎門外) 중국인 반가(潘哥)의 화성여관(華盛旅)에서 의열단(義烈團)이 조직될 때 창단시부터 참여하여 단장인 동지 김원봉(金元鳳) 등과 함께 무력에 의한 항일독립투쟁을 결의하였다. 의열단은 길림에서 조직되었으나 일정한 소재지가 없이 만주·상해·남경·북경 등지로 전전하면서 무력을 유일한 독립수단으로 삼고 다수의 일제 요인과 주구를 처단하고 일제의 관공서도 많이 폭파하였는데 그 첫사업이 밀양경찰서 폭파거사였다. 1920년 초에 곽재기(郭在驥) 등이 만주로부터 폭탄 등 무기를 가지고 입국하여 먼저 밀양경찰서를 폭파하려고 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곽재기를 비롯한 동지들이 피체·투옥될 때 그도 이 거사의 연루자로 피체되어 1921년 6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대구에서 경북의열단(慶北義烈團)에 가담하여 활동하던 중 세칭 '양건호(梁建浩)사건' (양건호는 의열단원 李鍾岩의 가명)에 연루·피체되어 대구형무소에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7년 12월 출옥후 항일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1943년 1월 대구형무소에 구금되어 1944년 1월 23일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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